얼마 전, 이직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질문이 있었다.
나는 일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가요? 성장, 의미, 재미, 인간관계, 돈, 워라밸 중 두 가지만 택해 그 이유를 적어보세요.
이 질문은 『자기만의 트랙』이라는 책이 출처이며, 세미나에서는 해당 책을 인용했다.
처음 봤을 땐 간단하게 고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두 가지만 선택하려고 하니 다른 것들을 포기하기가 어려워 긴 시간을 고민하게 됐다. 모든 요소들이 일을 할 때 중요하다고 여겼던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족되지 않으면 이직을 고려할 것 같은 가치가 무엇인지 먼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제외한 것은 돈이었다.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함도 있기 때문에 많이 벌면 벌 수록 좋겠지만, 돈은 나의 가치가 높아질 수록 자연스럽게 결과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는 돈보다는 성장 혹은 의미 같은 것이 나에겐 좀 더 높은 가치이다.
돈을 가장 최우선적인 가치로 둔다면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전락되기 때문에 일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한 사람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율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이에 투자하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일은 단순히 노동 이상의 의미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이번에 이직을 결심했을 때도 돈이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기에 다른 가치에 비해 우선 순위가 낮아 먼저 제외시켰다.
워라밸에 대해서는 나 또한 쉼이 중요하지만, 가정에 따라 중요도는 달라질 것 같다.
나는 개인 시간이 줄어들더라도,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고, 내가 하는 일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느껴진다면 시간을 투자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워라밸은 ‘시간의 많고 적음’ 그 자체보다는 ‘그 시간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워라밸은 내 기준에서 ‘성장’과 ‘의미’보다 핵심적인 가치는 아니라고 여겨 제외했다.
재미없는 일은 오래 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경험을 떠올려보면, 재미라는 감정은 대부분 ‘의미’라는 가치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느껴질 때, 그 과정이 더 재미있어졌다. 반대로 아무리 흥미로운 기술을 다뤄도, 그것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는 재미가 조금 덜어질 때가 있는 것 같다.
개발 자체는 지금까지 크게 재미 없던 적이 없다. 인프라를 만지고, 새로운 라이브러리를 만들고, 웹 페이지를 구현하는 일들은 기본적으로 흥미로웠다. 따라서 개발이라는 분야를 결정한 상태에서 현재로서 재미보다는 의미를 더 추구하게 된다. 직업을 선택할 때의 가치라면 재미가 높은 위치를 차지할 것 같다.
여기까지 정리하고 나니 성장, 의미, 인간관계 세 가지가 남았다. 이 중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하게 만든 것이 인간관계였다.
나는 일을 하면서 동료와의 관계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힘듦이 상쇄되는 효과가 있다. 반대로 아무리 좋은 조건의 회사라도 인간관계가 힘들면 오래 다니기 어렵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단순히 “있으면 좋은 가치”가 아니라, 무너졌을 때 치명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예전에 팀원들이 대거 퇴사했던 적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회사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남아 있는 동료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협업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고, 배울 것도 많았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일에 있어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가치다. 다만 회사 선택의 첫 번째 기준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이렇게 결정적으로 남은 두 가지는 성장과 의미였다.
내가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던 순간을 돌아보면, 성장의 한계나 의미의 부재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반대로 불안정한 환경에서도 남아 있기로 했던 이유 역시 성장과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팀원들이 많이 퇴사해서 저연차의 주니어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프론트 개발을 담당해야 했고, 개발 시니어가 한 명도 없었기에 매우 불안정했다. 이직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주변 주니어 개발자 분들의 경험을 들어보았을 때 원하는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많지 않았다.
따라서 부담스러웠지만 혼자 개발을 담당해서 많은 성장을 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해 볼 수 있기에 퇴사하지 않았다. 그렇게 프로덕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었던 경험은 내게 값지게 자리잡은 것 같다.
다음 회사를 선택할 때 두 기준을 중점적으로 두고 이직을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일을 함으로써 누군가의 불편을 해소하여 큰 도움이 되거나, 어떤 사회적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 단순히 일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 어떤 뜻 있는 가치를 창출해보고 싶다. 그런 플랫폼은 무엇인지, 분야는 무엇인지 계속 찾아가야될 것 같다.
언젠가 커리어를 돌아봤을 때, 단순히 생계를 유지한 흔적이 아니라, 성장을 거듭하며 의미 있는 가치를 남겼던 시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만든 작은 성과들이 다른 누군가의 삶에 분명한 도움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